[방성석 칼럼] 나는 살라미스에서 이순신을 보았다.
[방성석 칼럼] 나는 살라미스에서 이순신을 보았다.
  • 방성석 경제학박사 / (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07.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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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성석 경제학박사/()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살라미스(Salamis)에서 만난 이순신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살라미스해전(Battle of Salamis)의 현장에 와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중해 여행 중 그리스의 가장 큰 무역항 피레우스(Piraeus)에서 코린트운하(Corinth Canal)를 찾아가다 마주친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약성경 고린도서(Corinthians)’에 등장하는 난공불락의 요새, 자유분방한 도시 코린트를 방문한다는 설렘도 있었다. 그러나 평생 무역인으로서 더 큰 관심은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인 코린트운하에 있었다. 그리스의 피레우스와 이탈리아의 브린디시 항로를 320km나 단축하며 해운산업의 혁신을 이룬 지중해 통상무역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마주친 살라미스해협에서 나는 이순신을 만났다. 세계 3대 해전으로 알려진 살라미스해전(Salamis BC480)·칼레해전(Calais 1588)·트라팔가해전((Trafalgar 1805) 과 함께 불현듯 임진왜란(1592-1598) 3대 해전으로 불리는 한산도해전·명량해전·노량해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라미스해전은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인 기원전 4809월 그리스의 연합함대 378척과 페르시아의 제국 함대 1,200척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장군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 좁은 해협으로 유인하여 격멸했다. 살라미스해전의 승리로 에게해를 장악한 그리스는 오랫동안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하며 서구 문명의 역사 발전을 이루었다.

 

명장의 승리 비결, 선승구전(先勝求戰)의 공통점

기원전 5세기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규모 해전이 살라미스해협에서 벌어졌다. 같은 시기 최초의 병법서 <손자병법>이 역사 속에 등장했다. 군형편(軍形篇)의 가르침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놓고 적과 싸우며(勝兵先勝而後求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승리를 추구한다(敗兵先戰而後求勝).”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도 조선의 이순신도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승리전략 즉 선승구전(先勝求戰)의 공통점이 있었다.

-유인 전술과 해협의 지형 전략을 구사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아테네 넓은 바다에서 살라미스 좁은 해협으로 유인하여 격멸했다. 이순신은 한산도해전에서 일본군을 견내량 좁은 해협에서 한산도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격멸했고, 명량해전에서는 일본군을 벽파진 넓은 바다에서 울돌목 좁은 해협으로 유인하여 격멸했다. 이길 수 있는 지형으로 유인해서 싸우는 선승구전이었다.

-공격력이 우수한 전투함을 건조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3단 노함선 트라이림(trireme)을 건조했다. 충각과 돛 그리고 3단으로 배열된 노는 페르시아의 전선보다 기동성과 충격력이 월등했다. 이순신은 판옥선에 거북 모양의 덮개를 씌워 거북선(龜船)을 창제했다. 격군과 사부가 분리된 공간에서 노를 젓고 총통을 발사하니 돌파력과 파괴력이 뛰어났다. 이길 수 있는 전선을 확보하고 싸우는 선승구전이었다.

-지휘관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육군만으로는 페르시아군의 침략을 막을 수 없다며 강력한 해군만이 적군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과부적의 전함에도 페르시아 대함대를 무찔렀다. 이순신도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어명에도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군선이 있다며 해전을 이끌었다. 절대 열세의 전함에도 죽기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필사즉생의 정신이었다. 군사의 사기충천은 이겨놓고 싸우는 선승구전이었다.

우리 안의 영웅, 세계에 빛나는 이순신

전쟁사 연구가들도 쉽지 않은 살라미스 해전지 답사였다. 이순신연구가의 눈에 비친 살라미스해협은 곧 한산도해전의 견내량이었고 명량해전의 울돌목이었다. 기원전 살라미스해전을 지휘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세계사적 명장이라면, 16세기 임진왜란에서 모든 해전을 승리로 장식했던 이순신이야말로 세계사적 명장이 아닐 수 없다. 살라미스해전이 세계사적 해전이라면 임진왜란의 분수령을 이뤘던 한산도해전, 정유재란의 버팀목이 되었던 명량해전,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던 노량해전 등도 세계사적 해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왜 영웅을 나라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는가? 충무공 이순신처럼 우리 안에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많은 이순신이 있다. 세계 최빈국에서 G10의 경제 기적을 일궈낸 기업인, UN 등 국제무대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외교관, 아카데미영화제 등 국제 예술계를 주름잡는 문화예술인, K-Pop·K-Drama 등 코리아신드롬을 전파하는 한류 전사, 프리미어리그 등 월드 스포츠를 주도하는 스타 선수, 팬데믹의 공포에도 코로나 방역을 선도하는 의료진, 이들 모두가 자랑스러운 우리의 영웅 이순신이다. 종종 위기에 처한 지도자들이 필사즉생, 백의종군을 들먹이며 이순신을 남발한다. 과연 정의와 공의, 희생과 헌신으로 위국했던 이순신의 모습인지 돌아보면 좋겠다. 살라미스해협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처럼 이순신이 목숨 바친 한려수도에 금파은파가 영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