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8 15:04 (수)
[방성석 칼럼] 원칙을 지키는 리더가 마음을 얻는다
[방성석 칼럼] 원칙을 지키는 리더가 마음을 얻는다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08.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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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

난중일기 갑오년(1594) 618, 통제사 이순신이 상급자인 도원수 권율(權慄)을 비판하고 있다. “도원수의 군관 조추(趙揫)가 전령을 가지고 왔다. 내용은 도원수가 두치(豆峙)에 이르러, ‘광양현감 송전(宋筌)이 수군을 옮겨다 복병으로 정할 때, 사사로운 감정을 이용했다라는 말을 듣고 군관을 보내 그 이유를 캐물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따름이다. 도원수가 서출 처남인 조대항(趙大恒)의 말만 듣고 사사로이 일을 행한 것이 이렇게도 심하니 통탄스럽다.”

이순신의 비판은 사사로운 감정을 이용한 것은 오히려 처남의 말만 듣는 도원수 권율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조추와 배응록(裵應祿)이 도원수의 처소로 돌아가니 이순신의 비판이 전해졌다. 그러자 71일의 일기다. “배응록이 도원수의 처소에서 돌아왔다. ‘도원수가 자기가 한 말을 뉘우치면서 보냈다하니 우스운 일이다(可笑).” 막역한 상관 도원수일지라도 사적(私的)인 처사는 통렬히 비판하는 원칙주의자 이순신이다.

난중일기 병신년(1596) 228, 통제사 이순신이 최상급자인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을 비판하고 있다. “도체찰사의 군관이 이곳에 이르렀는데, ‘전라도 수군 중에 우도의 수군은 좌도와 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원하라는 명령이 있다고 했다. 우스운 일이다. 조정의 계책이 이럴 수 있는가, 도체찰사가 내놓는 것이 이렇게 제대로 된 것이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니 어찌할 것인가.”

이순신은 현재의 수군 사정상 전라우도 수군의 제주 및 진도 후원은 적절치 않다라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도체찰사의 계책에 호응한다며 소속부대를 이끌고 본도(전라우도)로 돌아가겠다 한다. 그 작심이 괘씸하여 그의 군관에게 곤장 70대를 쳤다. 급기야 312일의 일기다, “저녁에 소국진(蘇國秦)이 도체찰사의 처소에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고 한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우스운 일이다(可笑).” 경외하는 상관 도체찰사일지라도 잘못된 계책은 신랄하게 비판하는 원칙주의자 이순신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친구가 없다?

기묘년(1579), 이순신이 훈련원 봉사(8)로 근무할 때다. 상관인 병부랑(5) 서익(徐益)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차례를 뛰어넘어 참군(7)으로 올리려 하였다. 이순신은 담당관으로서 이를 용납하지 않고, “아래에 있는 자를 건너뛰어 올리면 당연히 승진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게 되니, 이는 공평하지 못할뿐더러 또 법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였다. 병부랑이 위력으로 강행하려 했으나 이순신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이 일로 후일 발포만호에서 파직을 당하니 원칙을 지킨 대가는 매우 아팠다.

경진년(1580), 이순신이 발포만호(4)로 있을 때다. 전라좌수사(3) 성박(成鎛)이 사람을 보내서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다가 거문고를 만들고자 했다. 이순신은 허락하지 않으며, “이것은 관가의 물건이다. 그리고 심은 지 여러 해된 나무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베어버릴 수 있겠느냐?”라고 돌려보냈다. 성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냈으나 감히 베어 가지는 못했다. 한그루의 오동나무조차 관물(官物)은 사적(私的)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순신의 원칙이었다.

임오년(1582), 이순신이 다시 훈련원 봉사(8)가 되었을 때다. 병조판서(2) 유전(柳㙉)이 이순신에게 좋은 화살통(箭筒)이 있음을 알고 활 쏘는 기회에 그것을 달라고 청했다. 이순신이 화살통을 드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으나, 사람들이 알면 대감을 무어라 할 것이며, 또 소인을 무어라 하겠습니까? 하찮은 화살통 하나 때문에 대감과 소인이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심히 미안한 일입니다.” 하니 유전도 그대의 말이 옳도다.” 하였다. 발포만호 파직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저버리는 이순신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

리더 이순신, 진정한 원칙과 정직한 신뢰

이순신이 법과 원칙에 따라 매사를 처리하니 음해하고 모함하는 자들이 많았다. 22년 관직 동안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이순신을 높이 평가하는 대신들도 많았다. 예컨대 우의정 이산해(李山海)와 병조판서 정언신(鄭彦信)의 무신 불차채용 천거, 영의정 류성룡(柳成龍)의 전라좌수사 천거, 행 지중추부사 정탁(鄭琢)의 이순신옥사의 구명 상소, 행 형조판서 김명원(金命元)과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의 통제사 재임용 천거 등이다. 충청병사 군관에서 발포만호로 8품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7품계의 파격 등용과, 파직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등용 등은 모두 법과 원칙을 지켜서 얻어진 신뢰의 결실이었다.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살피면 친구가 없다,”라는 고사가 있다. 지나친 비판을 삼가라는 뜻이지, 원칙에 반해도 따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고사도 있다. 의심받을 일로 신뢰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실천한 진정한 원칙과 정직한 신뢰는, 살아서 무신의 최고 품계인 정2품 정헌대부에 올랐고, 죽어서 신하의 최고 품계인 정1품 영의정에 올랐다. 오늘의 리더가 반드시 배워야 할 일, “원칙을 지키는 리더가 마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