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석 칼럼] 프로답게 거절하라, 이순신처럼…….
[방성석 칼럼] 프로답게 거절하라, 이순신처럼…….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09.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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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금토패문(禁討牌文),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

갑오년(1594) 36, 임진왜란 발발 2년째다. 전쟁은 모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강화교섭으로 싸움은 소강상태에 머물렀고, 일본군은 남해안 곳곳에 왜성을 쌓고 북상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조선 팔도엔 역병이 돌아 죽어 널린 시체가 넘쳐났고, 속전속결 끝내도 시원치 않을 강화교섭은 지지부진하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2차 당항포 해전에서 일본 군선 21척을 격멸하고 거제의 흉도(胸島)에 도착했다.

이때 강화 교섭자로 웅천왜성(경남 진해)에 들어가 있던 명나라 선유도사 담종인(譚宗仁)이 일본군을 치지 말라는 금토패문(禁討牌文)을 보내왔다. “일본군의 여러 장수가 마음을 돌려 모두 무기를 집어넣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며 그들 본국(日本)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너희들도 모든 병선은 각각 제 고장으로 돌아가고, 일본군 진영에 가까이하여 트집을 일으키지 말도록 하라. 병선을 각각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라.”

이 패문을 받아든 이순신은 참으로 비통했다. 담종인이 일본군에 속아 이런 명령을 했으니 이순신은 결연한 각오로 답문을 썼다.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答譚都司宗仁禁討牌文)이다. “조선국 신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립니다. 왜적이 스스로 트집을 잡아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죄 없는 우리 백성을 살육하고, 또 한성으로 쳐들어가 흉악한 짓들을 저지른 것이 말할 수 없으니,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의 통분함이 뼛속 깊이 사무쳐서, 이 왜적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그래서 각 도의 배들을 모두 정비하여 곳곳에 주둔하면서, 동서에서 호응하고 육지에 있는 장수들과도 의논하여 수륙 합동으로 공격해서, 남아 있는 왜적의 배 한 척, 노 한 개도 돌아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왜적의 종자까지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대체 제 땅은 어디고, 제 고장은 어디란 말입니까?

그런데 패문의 말씀 가운데 일본 장수들이 마음을 돌려 무기를 거두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하니, 너희는 모든 병선을 속히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고, 일본 진영에 가까이하여 트집을 일으키지 말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왜놈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제·웅천·김해·동래 등지는 모두 다 우리 땅인데, 우리더러 왜적의 진영을 토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무슨 뜻입니까? 또 우리에게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제 고장이란 또한 어디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또 트집을 일으킨 자는 우리가 아니고 왜적들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이란 변사만단(變詐萬端), 간사하기 짝이 없으므로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도들이 아직도 그 패악한 행동을 그치지 않고,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해가 지나도 물러가지 않고 여러 곳을 멧돼지처럼 쳐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기를 전일보다 곱절이나 더한데, 무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생각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지금 저들이 강화를 맺고자 한다는 것은 사실은 속임수와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기기 어려우니 우선은 기한을 넉넉히 주시면 우리 임금께 급히 아뢰려 합니다. 그러니 대인께서는 이런 뜻을 널리 살피시어 왜적들에게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逆天)과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順天)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해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답서를 드립니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억기, 삼가 올림 

강온전략(强穩戰略), 설득과 대안을 병행하라 

참으로 명문이다. 치밀하여 빈틈없고 강력하며 온건하다. 단언컨대 담종인의 지시를 임금께 알려 공론화시키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또 비지역순지도(俾知逆順之道)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을 들어 하늘의 뜻을 거역한 일본군을 쳐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하고 있다. 또 삼도 수군의 수뇌부가 모두 연명(連名)함으로써 이순신 개인이 아닌 조선 수군 전체의 뜻으로 압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종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잠시 보류하겠다는 대안(代案, alternative)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선유도사(宣諭都使)는 명나라 만력제 신종이 파견한 황제의 특사였다. 조선의 일개 장수가 거역할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담종인은 왜성에 머물러 있어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 여간한 명분의 거절로는 천황의 명령에 불복한다는 질책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의 거절은 용감했다. 정당한 거절(拒絶, refuse)은 단절(斷絶, break)이 아니라 오히려 재결합(再結合, re + fuse)이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능한 교섭자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기 위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 움츠렸다 뛰면 더 멀리 도약하듯 잠시 웅크리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순신은 정치인도 외교관도 아니었다. 그러나 교섭에는 상대가 있음을 아는 무문겸전(武文兼全)의 프로였다. 정치도 외교도 통상도,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직진만 하는, 오늘의 우리가 배워야 할 충무공 이순신의 거절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