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8 15:04 (수)
[방성석 칼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연설의 기적
[방성석 칼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연설의 기적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09.2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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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玉浦破倭兵狀>

임진년(1592) 57,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첫 번째 출동 첫 번째 전투였다. 여수를 떠난 지 사흘째, 드디어 거제 옥포(玉浦) 앞바다에서 일본군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부하들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경상도에서 육군과 수군이 모두 패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상 일본군과 마주치니 모두가 우왕좌왕 당황하고 있었다.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때 맹장 이순신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엄한 호령에 신중함을 되찾은 군사들이 옥포를 향해 일제히 공격하니 일본 군선 30척 중 26척을 불태웠다. 이순신의 첫 번째 승리였다. 40전 전승 무패, 기적의 서막을 여는 옥포해전이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亂中日記 丁酉Ⅱ>

정유년(1597) 915, 이순신이 진도 벽파진에서 해남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일본 군선 2백여 척이 어란포까지 추격해왔는데, 적은 수의 수군으로 명량(鳴梁)을 등지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하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고, 이순신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전투,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신념뿐이었다. 이순신이 일장연설을 펼쳤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했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라고 했다.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자신감으로 재무장한 수군은 다음 날 오전 판옥선 13척으로 일본 군선 133척을 무찔렀다. 이순신 자신도 실로 하늘의 도움이라 했던 기적의 승리 명량대첩이었다.

최후 승리를 견인한 이순신의 마지막 연설

전방급신물언아사(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다. 조심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李忠武公全書>

무술년(1598) 1119일 새벽 2시경,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가 노량(露梁)에서 벌어졌다. ·명 연합함대가 북서풍을 타고 화공(火攻)을 펼쳤다. 퇴로를 잃은 일본군은 관음포구에 갇혔다. 필사 저항의 일본군이 이순신의 지휘선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여명이 동틀 무렵 부하 송희립이 먼저 총탄에 맞았다.

놀란 이순신이 굽혔던 몸을 펴는 순간 적탄이 가슴을 뚫었다. 이순신의 마지막 한마디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조심해서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통제사 이순신의 죽음을 알 리 없는 장졸들이 끝까지 싸워 일본 군선 3백 척 중 2백 척을 격멸했다. 이순신의 당부대로 주장의 죽음을 숨긴 채 최대의 승리를 거두니 그야말로 마지막 기적을 이루는 노량대첩이었다.

전시 연설의 힘, 불안감을 용기로 바꾸는 힘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L.S. Churchill)은 연설의 대가였다. 1940513일 총리 취임 후 첫 하원 연설이다. “나는 피와 수고, 눈물과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조국에 헌신을 각오하는 감동 연설은 전쟁의 공포에 빠진 영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처칠은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전쟁영웅이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헤밍웨이는 처칠은 구어(口語)의 대가이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처칠의 전시 연설도 충분히 문학적 가치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도 전시 연설의 대가였다. 앞에 언급한 연설 외에도 전쟁에 지친 마음을 움직였던 명언들이 많다. 예컨대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떤다.

”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讎若除 死卽無憾),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죽어도 유한이 없겠습니다,” 등이다. 이순신과 막역한 사이였던 태촌 고상안의 증언이다. “이순신의 정연한 논리의 화술과 지혜는 능히 적을 제압할 재주가 있었다.”

연설(speech)은 간결하고 핵심적이어야 한다. 정곡을 찌르는 어휘와 공감을 이루는 콘텐츠로 청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전달하는 메시지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쉽지만 기억에 남는, 짧지만 의미가 담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트릴 뿐이다.

상황과 현실에 맞는 진실과 정직을 담았을 때 공감과 감동을 부를 수 있다. 이순신의 전시 연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촌철살인의 정신무장(精神武裝)이었고, 불안감을 용기로 바꾸는, 이겨놓고 싸우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었다. 베이징대 리이위(李一宇)가 쓴 세 치 혀가 백만 군사보다 강하다가 중국 정치인과 경제인에게 필독서가 되었다고 한다. 반드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