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17:42 (토)
[방성석 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순신과 의병장
[방성석 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순신과 의병장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09.28 09: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조선은 누가 구했나? 임진왜란을 극복한 원동력

조선의 임진왜란 극복,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크게 나누어 <수군(水軍)의 승리>와 <의병(義兵)의 항전>이라 할 수 있다. 논란 많은 명군의 지원, 선조의 파천 등은 논외로 한다. 조선은 왕이 곧 국가인 나라였다. 그러나 왕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했고, 나라를 버리고 망명을 도모했다.

일본의 전국시대 성주는 전쟁에 패하면 항복하거나 할복했다. 백성은 새로운 성주를 모시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백성은 도망친 왕에게 충성하며 조선 8도에서 의병으로 항전했다. 침략자 일본군에겐 상상 밖의 일이었다. 의병 대부분은 평민 농민 노비 등 하층민이었지만, 의병장 대부분은 과거에 급제한 유생들로 문반의 관직을 지냈거나 고사한 사대부들이었다. 조선 사회 지식층이었고 기득권층이었다.

예컨대 경상도 의령의 곽재우는 정시 2등 급제자였으나 곧 취소되어 은거 중이었고, 합천의 정인홍은 사마과 생원으로 황간현감을 지냈고, 고령의 김면은 사마과 진사로 공조좌랑에 올랐지만 고사했다.

전라도 담양의 고경명은 갑과 장원(壯元)급제로 동래부사를 지냈고, 화순의 최경회는 을과 급제로 영해군수를 지냈으며, 나주의 김천일은 학행으로 수원부사를 지냈다. 충청도 옥천의 조헌은 병과 급제로 전라도 도사를 지냈다. 황해도 연안의 이정암도 병과 급제로 이조참의를 지냈고, 함경도 길주의 정문부는 갑과 아원(亞元)급제로 사헌부 지평과 함경북도 평사를 지냈다.

승병장으로는 평안도 묘향산의 휴정(서산대사), 강원도 금강산의 유정(사명대사), 충청도 계룡산의 영규(靈圭) 등이었다.

이순신과 의병장, 수전과 육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이순신이 언급한 병참기지 호남의 중요성이다. 이순신은 남해에서 제해권 장악으로 호남 침략을 차단했고, 의병장 곽재우는 의령 정암진에서 안코쿠지 에케이를 공격하며 호남 북상을 저지했다.

의병장 황박, 김제군수 정담, 전라도 절제사 권율, 동복현감 황진은 금산성을 점령한 뒤 전주로 남하하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웅치, 이치에서 차단했다. 의병장 고경명은 금산(당시 전라도)을 탈환하다 전사하니 1차 금산성 전투, 의병장 조헌과 영규도 금산을 공격하다 죽으니 2차 금산성 전투였다. 호남의 관문 진주성을 공격한 하세카와 히데키즈 등을 목사 김시민, 의병장 곽재우, 임계영 등이 무찌르며 전라도 진출을 차단하니 1차 진주성 전투였다.

가토 기요마사 등이 총출동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의병장 김천일, 고종후,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등 6만 명의 조선인이 몰살되지만, 일본군 역시 막대한 손실로 호남진격은 무산되었다.

이순신과 의병장의 군사적 연합은 갑오년(1594) 10월 거제 장문포 해전이다. 난중일기의 기록으로, 9월 26일 의병장 곽재우, 김덕령 등이 도원수 권율의 지시로 견내량에 도착했다. 이순신이 이들과 연합하여 수륙합동으로 장문포를 공격하니 일본군은 갈팡질팡 기세를 잃고 이리저리 달아나며 항전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순신에게 연전연패 혹독하게 당했던 일본군이 겁을 내어 접전을 피했기 때문이다. 10월 7일 곽재우와 김덕령이 철수하며 작전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7년 전쟁 중 유일하게 전선 1척과 사후선 3척을 잃었다. 체찰사 윤두수가 추진했던 조선군 단독의 일본군 공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참전했던 절름발이 의병장 황대중은 이순신이 정유년 의금부에 갇혀있던 내내 옥문 밖에서 농성으로 구명을 상소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그 섬뜩한 군약십조

임란이 발발하자 많은 장수와 관리가 자기만 살겠다고 가족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의병장들은 백성과 나라를 위해 온몸을 내던졌다.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고종후·고인후는 삼부자가 모두 문과 급제자였지만 금산성과 진주성 전투에서 모두 목숨을 바쳤다.

경상도 의병장 정인홍은 남명 조식에게 배운 상무정신으로, 자신의 전공을 보고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다. 만석꾼 의병장 김면은 의병 유지로 가산을 탕진하고 처자가 문전걸식해도 모른 체했다.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는 북관대첩의 공로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오히려 모함을 당해 북변을 맴돌았다.

열혈남아 의병장 김덕령은 겨우 29세에 억울한 고변으로 고문을 당해 죽었다. 이러한 희생과 홀대에도 의병장들이 실천한 군약십조(軍約十條),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 오늘의 우리가 되새길 일이다.

1조, 꿈을 믿고 헛소문을 만들어 여럿의 마음을 떠나가게 하면, 이는 요민(妖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2조, 참설(讒說)을 믿고 멋대로 행동하여 종사(從事)를 물리치지 않으면, 이는 역민(逆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3조, 허언(虛言)을 조작하여 남을 속여 흩어지게 하면, 이는 와민(訛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4조, 행오(行伍)가 무리를 잃어버리고 이유 없이 서로 다투면, 이는 난민(亂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5조, 남의 성공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으면, 이는 기민(欺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6조, 민간을 약탈하여 자기 소유로 하면 이는 적민(賊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7조, 힘을 믿고서 윗사람을 능멸하고 업신여기면, 이는 완민(頑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8조,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하면 이는 패민(悖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9조, 남의 작은 잘못을 찾아내어 상부에 알려 서로 다투면, 이는 간민(姦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10조, 군대와 친목하지 못하고 서로 성내고 다투면, 이는 오민(惡民)한 것으로 쳐서 죽인다. <慶尙右道 咸安 李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