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17:12 (금)
[방성석 칼럼] 극도의 스트레스, 그 치유의 지혜
[방성석 칼럼] 극도의 스트레스, 그 치유의 지혜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10.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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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육신의 고통보다 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이순신은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 그는 북방 호적과 남방 왜구와 싸웠던 일개 무관일 뿐, 국사에 관여한 바도 없고 당쟁에 가담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22년 관직 동안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했다. 모두 시기와 음해에서 비롯된 시련이었다. 과연 이순신은 그 엄청난 심리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치유했을까,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전쟁터, 극도의 스트레스는 적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었다. 이순신은 일기를 쓰고 시를 짓고, 악기를 만지고 연주를 느끼고, 취미를 겨루고 승부를 나누고, 점괘를 기대고 불안을 떨쳤다. 모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노력이었다. 울분을 삭이며 기록했던 난중일기에서 그 치유의 지혜를 알아본다.

일기를 쓰고 시를 짓다, 문학 치유

이순신은 임진왜란 시작부터 끝, 임진년(1592) 1월 1일부터 무술년(1598) 11월 17일, 순국하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썼다. 일기는 매일의 시가 되었고 매일의 시가 모여 일기가 되었다. 이순신은 달과 바람 그리고 바다를 읊조리며 근심을 털고 분노를 삼켰다. 일기를 쓰고 시를 짓는 동안은 몰입의 시간, 망각의 치유를 이룰 수 있었다.

“저녁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민다. 자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니 닭이 울고서야 선잠이 들었다.”(1593.5.13).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 산란하고, 홀로 배 뜸 밑에 앉으니 마음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지고,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1593.7.15). “이날 밤 달빛은 비단결 같고 바람 한 점 일지 않는데,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만 우러러 탄식한다”(1597.10.13).

악기를 만지고 연주를 느끼다, 음악 치유

이순신은 스스로 악기를 손보고 부하에게 연주를 청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현실을 잊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죽고 싶을 만큼의 심리적 고통을 피리·거문고·퉁소·가야금 가락으로 떨쳐냈다. 음악으로 번잡한 마음을 달래고 천근의 압박을 덜어낸 것이다. 음악이 육체와 영혼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은 동서고금의 지혜였다.

“달빛이 비단결같이 고와 바람도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다. 해(海)를 시켜 피리를 불게 했는데 밤이 깊어서야 그쳤다”(1594.8.13). “혼자 대청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배영수를 불러 거문고를 타게 했다”(1595.5.13). “이날 저녁 달빛은 대낮 같고 바람 한 점 없었다.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번잡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홍수를 불러서 퉁소 부는 소리를 듣다가 밤 이경에야 잠들었다.”(1596.1.13).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맸다.”(1596.3.19).

취미를 겨루고 승부를 나누다, 오락 치유

이순신은 비가 오는 날이면 부하들과 바둑·장기·종정도·씨름을 겨뤘다. 종정도(從政圖)는 승경도(陞卿圖)라고도 하는데, 종이에 관직과 품계를 적어 놓고 윷을 놀듯이 말을 써서 노는 것이다. 게임으로 하는 오락은 노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방편이었다. 협동심과 경쟁심을 유발하고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는 지혜였다.

“비가 많이 오다 갰다. 이영공(이억기)과 첨사 이홍명이 바둑을 두었다.”(1593.3.13) “비가 계속 내렸다. 충청수사와 순천부사를 불러서 장기를 두게 하고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다.”(1594.7.1) “큰비가 종일 내렸다. 초경에 곽란이 나서 한참 구토를 했는데 삼경에 조금 가라앉았다. 군관 송희립, 김대복, 오철 등을 불러서 종정도를 겨루었다”(1596.3.21) “경상수사가 술잔 돌리기를 한창일 때 씨름을 시켰는데 낙안군수 임계형이 일등이었다. 밤이 깊도록 이들을 뛰놀게 한 것은 굳이 즐겁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노고를 풀어주고자 함이었다”(1596.5.5.)

점(占)을 기대고 불안을 떨치다, 점괘 치유

이순신은 수시로 점을 쳤다. 척자점은 문자나 숫자(字)를 쓴 목패나 종이를 던져(擲) 점괘(占卦)를 읽는 점이다. 장수가 점괘에 의지하는 게 궁색해 보이지만, 국왕 세종도 장수에게 점치는 병서, 태일병법(太一兵法)을 보낸 바 있다. 점복(占卜)에 기대어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대적 풍속이었고 문화적 정서였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를 점쳐보니(擲字占之) ‘군왕을 만나보는 것과 같다.’라 했다. 매우 좋았다. 다시 쳐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1594.7.13). “이른 아침에 손을 씻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쳐보니, ‘중이 속세에 돌아오는 것과 같다.’라는 괘를 얻었다. 다시 쳤더니 ‘의심하다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 매우 길하다.”(1594.9.1). “새벽에 촛불을 밝혀 왜적을 칠 일이 길한지 점쳤다.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라는 것이고, 다시 쳐보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나왔다. 흉도 안 바다에 진을 치고서 잤다”(1594.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