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17:12 (금)
[방성석 칼럼] 패자뿐인 전쟁, 승자는 없는가?
[방성석 칼럼] 패자뿐인 전쟁, 승자는 없는가?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10.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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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임진왜란은 국제전쟁이었다.

임진년(1592) 4,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 전쟁의 원흉(元凶)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향도(征明嚮導), 조선을 앞세워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헛된 야욕이었다. 명은 조선의 도성이 함락되고 평양성이 무너지자 순망치한(脣亡齒寒), 자국의 위험을 감지하고 전쟁에 개입했다. 동북아시아 조선반도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조··일 삼국의 국제전쟁이 되었다.

삼국은 각자의 입장으로 전쟁의 의미와 명칭을 부여했다. 조선은 약탈을 일삼아온 왜구(倭寇)가 임진년에 전란을 일으킨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칭했다. 명은 동아시아 종주국으로서 제후국 간 전쟁을 평정한다는 만력동정(萬曆東征) 또는 항왜원조(抗倭援朝)로 명했다.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장하고 대륙 진출을 정당화하며 분로쿠·게이초노에키(文祿慶長) 또는 임진, 정유를 분리 분로쿠노에키(文禄), 게이초노에키(慶長)로 불렀다. 참전 규모와 피해 정도로 보아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은 패자뿐인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은 삼국 모두가 상처뿐인 전쟁,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각국은 모두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하고 있다. 조선은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압도적 전승(全勝)과 전국에서 거병한 의·승병의 항전(抗戰)으로 일본군을 격퇴한 승리의 전쟁으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중국으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 위대한 업적의 전쟁으로, 명은 종주국으로 조선을 도와 대륙 진출을 노리던 일본을 패퇴시킨 승리의 전쟁으로, 모두 자국의 시각으로 아전인수식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조··3국 모두 잃기만 했을 뿐 패자뿐인 전쟁이었다. 일본은 침략군이었지만, 조선에서 땅 한 평 차지하지 못하고 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급사하자 제 발로 물러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모야마(桃山) 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江戶) 시대가 도래했다. 명나라는 지원군이었지만 일본군을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4년의 강화 기간 중 내부의 혼란과 황제의 태정(怠政)이 가중되었다. ()의 만력제는 후금(後金)의 누르하치에게 패망하고 청()이 등장했다. 조선은 국왕 선조가 의주로 도망하고 왕자들이 포로로 붙잡혔다. 7년 전쟁으로 국토가 짓밟혔고 인구는 급감했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연이은 정묘·병자호란으로 청()에 항복하니 조선은 이때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임진왜란, 패자만 있고 승자는 없는 이유

임진왜란에서 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가? 주도권을 쥔 명과 일이 강화교섭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7년 전쟁 중 치열하게 싸웠던 기간은 3년이다. 임진년(1592) 4월부터 계사년(1593) 4월까지 1, 정유년(1597) 1월부터 무술년(1598) 11월까지 2년이다. 나머지 4년의 세월을 명과 일이 강화교섭에 소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계사년(1593) 1, 명나라 이여송 제독은 조선군과 연합하여 공격했던 평양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곧이어 벌어진 벽제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대패를 당했다. 양국 모두 대승과 대패를 경험하고 누구도 일방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명군은 만만치 않은 일본군의 전력에 전의를 상실한 채 더 큰 손실을 원하지 않았다. 종주국의 명분만 유지하려 했지 전투에는 꽁무니를 빼고 강화에만 집착했다. 일본군은 해전의 연패와 의병의 공격으로 군수물자 보급을 차단당했다. 굶주림과 혹한 그리고 명군의 참전까지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도 강화를 원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침략을 당한 통분으로 오직 싸워서 물리칠 뿐 강화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은 자력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였고, 명군에겐 작전 통제권도 외교 교섭권도 빼앗겼으니 강화교섭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끼이지도 못했다.

임진왜란, 과연 승자(勝者)는 없었는가?

조선의 수군 사령관 충무공 이순신이 있었다. 일본 방위대학교 이노우에 야스시(井上泰至) 교수의 연구다. 전후 육군 장교 시바야마 나오노리(紫山尙則)일본 수군이 이순신에게 패한 것이 임진왜란 최대의 실패 요인이었다.”라고 평했다. 일제강점기 진해에 주둔하던 일본 해군은 이순신은 적아(敵我)를 뛰어넘는 군신(軍神)”으로 교육했고, 매년 통영 충렬사를 참배하며 군신 이순신을 추모했다. 중국 인민출판사 모정(毛靜) 편집장의 연구다. <명실록(明實錄)>조선의 이순신을 본국에서 표창하라했고, 중국은 이순신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미몽(迷夢)을 깨버린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1978년 이후, 중국 초·()등 교과서의 <중국역사> 명대, <세계역사> 아시아 부분에 이순신의 승전 사실과 심지어 이순신의 초상화, 거북선이 들어있다라고 한다.

서양인들도 이순신을 세계적 명장(名將)으로 평가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B. Hulbert)1905이순신의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 해전이며, 조선을 구한 이순신은 한국의 넬슨이라 평했다. 영국인 해군 제독 발라드(G.A. Ballard)1921아시아의 위대한 영웅 이순신의 업적은 세계의 해군지휘관 최상위층에 올려놓아도 충분하다.”라고 극찬했다. 4백 년 전 동아시아의 전쟁 임진왜란에서,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쟁 임진왜란에서, 오직 이순신만이 시공(時空)을 초월한 승자로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