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17:12 (금)
[발행인 칼럼] 이건희 회장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발행인 칼럼] 이건희 회장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 이금룡 발행인
  • 승인 2020.10.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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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1977년 7 月에 삼성물산 입사하여 1987년7月1日부터 1992년 1月末까지 삼성 비서실 근무, 1997년에 임원 승진하여 99년 8月31日까지 삼성그룹에 근무한 무역경제신문 이금룡 발행인이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며 함께한 episode를 싣는다. 

1) 업의 개념을 정하라

1987년 12월 1일 취임하시고 제일 먼저 지시한 내용이 각 회사는 “업의 개념을 정립하라”라는 것이었다. 삼성물산을 비롯하여 전 계열사가 자신의 회사의 업의 개념이 무엇인지? 를 검토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양에 의한 실적이 목표인 경영에서 처음으로 우리 회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2) 비서실 각 팀장들은 최고의 박사들을 고문으로 두고 배워라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최고 브레인들인 삼성의 팀장(상무,전무급)들이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서실 각 팀에 박사 출신 권위자를 보좌역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맹일영 박사,안경수박사 ,박웅서박사등이 삼성 비서실 고문으로 임용되었다.

3) 중소기업 사장 2세들이 경영을 승계해도 삼성과 거래하도록 해라

비서실에서 제가 삼성이 지속적으로 발전 하기 위하여는 삼성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회장께서 지시를 내린 사항이다.
그 뒤로 삼성 협력회사들 교육이 이루어지고 2세들이 삼성에 취업, 삼성의 경영과 문화를 배우게 하였다.
또 중소기업인들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중소기업중앙회에 삼성에서 용인에 연수원을 건설하여 기증하였다.

4) 반도체 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하면서 반도체는 선구자이윤이 중요하다. 무조건 개발 시간을 단축시켜라 지연의 이유가 구매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반도체 강당에 구매 관련 전체부서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일사천리로 결제하였다.

5) 장례문화를 개선하다

삼성의료원 건설시에 이건희 회장은 대한민국에 장례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고스톱을 하는 장례문화”를 개선하였다. 병원 전반에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제가 받은 지시 사항 중에는 6인 입원실 어느 위치에 TV를 놓아야 모두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는 사항과 입원실 문을 어떠한 방식 등(예를 들면 도어록식, 슬라이드식 등을 검토하여 환자가 가장 편한 방식으로 설계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6) 대한민국 주부들이 가장 절실한 것은 탁아소이다.

삼성이 탁아소 문제를 개선해라, 이건희 회장은 여성의 사회참여를 정말 강조하였다. 저소득층이 주부가 일하고 싶어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해라

7)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93년 6월 신경영에 관한 것은 너무 많아서 여기서 언급하기도 어렵다. 이 당시 느낀 것은 이건희 회장님의 내공이다. 주어진 원고를 보시면서 이야기하신 모습은 본 적이 없고 아무 원고 없이 시간과 관계없이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얼마나 세상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계신지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경영 당시에 임직원들과 나눈 대회 시간은 350시간이다.

8) 삼성 스포츠단에 관한 이야기

80년대 말로 기억되는데 당시 스포츠단 감독의 훈련일지가 비서실 직원들에게 회장 지시로 회람되고 있었다. 당시 제일모직 탁구 감독인 박성인 감독의 훈련일지 노트인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고 과학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탁구대 모서리를 밀리미터 단위로 분석하여 공이 떨어졌을 때의 스핀양과 방향을 상세히 분석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크게 칭찬하면서 그 후 박성인 감독을 크게 신뢰하였다 뒤이어 박성인 감독은 삼성스포츠 단을 지휘하였고 특히 1997년부터 2011년까지 24~27대 빙상연맹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빙상 강국을 건설하고 2010년 선수단 단장으로 참석한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쾌거를 이룩한다.

9)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신경영 선언 이후 95년도 처음으로 CF 광고에 나온 카피라이트로 삼성의 1등 경영 시발점이 된 구호이다. 달에 처음 도착한 암스트롱 조지 워싱톤등이 모델로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삼성은 모든 경영의 초점을 '1등 주의로 정조준한다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디지털시대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한 전략으로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10) 최고의 인재를 지역전문가로 파견하라

이건희 회장은 앞으로 글로벌 시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글로벌 인재가 삼성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각 부서에서 제일 뛰어난 인재를 1년간 지역전문가로 파견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나도 할 수 없이 우리 부서 에이스차장을 중국 지역전문가로 파견하였다.
당시에 현업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직원을 차출하여 1년간 해당 지역에 파견하여 어학과 문화를 익히게 한다는 정책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95년부터 여직원도 파견하였다.

11) 앞으로의 일류 상품은 무조건 디자인에서 나온다

이건희 회장만큼 디자인에 집착하신 경영자도 드물 것이다. 1995년도에 SADI를 설립하여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고 세계 유수의 도시에  디자인 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삼성이 소니를 이긴 결정적인 강점이 디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장 시절 우리도 디자인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았다.

12) 전 세계 최고의 S급 인재를 스카우트하라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앞으로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인재들 쟁탈전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였다. 삼성건설의 경우에 뉴욕 최고의 건축사무소에서 인재를 스카우트했는데 그 인재가 두바이에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 정보를 가져와 결국 삼성건설이 수주에 성공하여 건설 완공하였다.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유명한 말씀이다.  

13) 21세기에는 자동차 산업이 반도체보다 10배 커진다

94년 초로 기억된다. LA에서 회의하시면서 강조하신 말씀이다. 당시 반도체가 세계 최초로 256M DRAM을 개발하고 한껏 반도체 사업이 힘을 받을 때 이미 이건희 회장은 10년-20년 뒤를 예견하였다.

14) 자동차는 바뀐다

93년쯤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삼성자동차 대관업무를 도와줄 때였다. 당시 현대 기아 등 대관업무 담당자와 만나면 한결같은 이야기가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몸집을 키우기 위하여 M&A를 하는데 왜 삼성이 자동차에 뛰어드느냐? (2000년도 50만대 예상). 이건희 회장님의 한결같은 말씀은 “자동차가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혜안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삼성에게 자동차까지 허락하시지 않았다.

15) 삼성물산이 물류사업을 담당해라

유통사업을 시작할 때이다. 당시 경영진이 백화점 사업을 회장에게 보고하러 갔다가 도중에 보고가 중단되는 상황이 있었다. 회장님 말씀을 당시에 분석해 보면 “물류사업”을 삼성물산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수입해와 국내 영세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사업을 실현하지 못하고 홈플러스를 기획할 때 영세 중소업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허락받아 지은 것이 최초로 우리나라 중소유통업체 물류센터인 계양구 작전동 물류센터이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전국에 슈퍼마켓 협동조합 물류센터가 건립되었다.

16) 전 직원 사회봉사 강조

1994년 사회봉사단을 만들고 삼성 전 직원의 사회 봉사활동을 강조하였다 삼성 직원들은 누구나 어려운 사람이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체질화 해야 한다. 지금도 직원들과 영등포 노숙인 쉼터와 미아리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대화하며 봉사활동 하던 일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17) 창조경영 강조

1999년 삼성을 떠나 옥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벤처업계로 몸담게 되고 삼성 내부의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2006년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에 강조한 ‘창조경영”이다. 더 이상 모방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창조경영이 좀 더 꽃피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도 상당히 강조하셨다.

당시에 삼성 자문 교수였던 최선미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의 삼성 창조경영에 대한 고민을 부군인 연세대 신학과 김상근 교수와 함께 풀어낸 것이 ‘르네상스 창조경영(2008.7)’이라는 책으로 이때부터 기업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금룡 발행인이 스크랩하여 보관 중인
2006년 06월 29일 (목) 한국경제 산업 A13면에 보도된 기사

18) 통찰력,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

이건희 회장님의 최고의 진가는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며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이다. 2009년 11월 28일 잠실 운동장에서 KT 주관으로 애플 아이폰 3G 판매가 시작되었다.

12월 1일 저녁에 무선사업부 전 임원을 소집하여 내린 한마디가 삼성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6개월 이내에 아이폰을 따라 잡아라” 퇴근 시간을 12시로 정하고 삼성의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스마트폰 개발에 쏟았다.

속도를 중시하는 이건희 회장의 방침에 따라 2010년 6월에 갤럭시가 탄생하고 그 신화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당시 경쟁사는 6개월 늦게 진입하여 아직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19) 마하경영 (1마하=초속 340m)

’마하경영’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비행기의 엔진부터 모든 부품이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초격차론’이다 신경영 20년이 지난 즈음 대대적인 삼성 개혁을 준비하셨 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건희 회장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천국에서 영면하시어 고이 잠드소서

 

무역경제신문 발행인 이금룡 및 전 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