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15:24 (금)
[방성석 칼럼] 지금 다시 이순신이 그립다
[방성석 칼럼] 지금 다시 이순신이 그립다
  •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 승인 2020.11.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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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br>
방성석 경제학박사/(주)이글코리아 대표이사,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여해(汝諧), 오직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

1545(인종 1) 38, 이순신이 한성 건천동(乾川洞,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본관 덕수이씨(德水李氏), 순신(舜臣)의 자()는 여해(汝諧)이다. 순신은 요순(堯舜)시대 순()임금의 신하를 의미하고, 여해는 순임금이 신하 중에 우()에게 후임을 맡기려 하자 우가 극구 사양하니 오직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 한 데서 연유한다. 이순신은 어려서 사서오경을 배우며 인의예지를 익혔다. 재주가 있어 성공할 만도 하였으나 매양 붓을 던지고 군인이 되고 싶어 하였다. 마침내 보성군수를 지낸 온양방씨 방진(方震)의 딸과 혼인하며 무인의 길을 걸었다. 무관이었던 장인에게서 무예와 병법을 익히고 무경칠서를 배웠으니 곧 세상을 화평케 할 무문겸전(武文兼全)의 장수 여해 이순신이다.

15762, 이순신이 3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21세에 혼인하여 다음 해부터 무예를 배웠으니 무려 10년 만이다. 그동안 훈련원 별시에서 한차례 낙방도 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고시는 어렵고 임용은 쉽지 않았다. 그해 12월에야 함경도 북방의 동구비보 권관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일 년 가까이 출사(出仕)를 기다리는 동안 이순신은 공직에 임하는 자신의 각오를 다졌다.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또한 족하리라, 권세 있는 자에 아첨하여 뜬 영화를 취하는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이라.”

사사로움에 기대어 영화를 취하지 않으리라.

15792, 이순신이 훈련원 봉사(奉事 8)로 있을 때였다. 병조판서 김귀영이 이순신의 장래가 촉망됨을 알고 자신의 서녀를 소실로 주고자 중매인을 보냈다. 그러자 이순신은 벼슬길에 갓 나온 내가 어찌 권세 있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보냐.”하고 그 자리에서 중매인을 돌려보냈다. 과연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병조판서는 오늘의 국방부 장관이다. 일개 위관급 장교가 장관의 사위가 되면 출세가 보장되는 청혼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장인 찬스 따위의 사사로운 인맥에 기대어 출세를 도모하는 건 이순신이 부끄러워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15924,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이 전쟁의 극복에 두 주인공이 있었다. 전쟁터에는 통제사 여해(汝諧) 이순신, 조정에는 영의정 서애(西厓) 류성룡이다. 나라의 위기마다 이순신을 북방의 조산보 만호로, 남방의 전라 좌수사로 천거했던 이가 류성룡이다. “()의 집이 이순신과 같은 동네에 있어 순신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던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순신은 사람됨이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는 단아하고 조심스러워 근엄한 선비 같았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담력과 용기가 있어 자기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하여 죽었으니, 이는 그가 평소 자기 자신을 수양한 결과이다. 그의 형 희신과 요신이 모두 먼저 죽자 순신은 두 형님의 자녀를 자기 자식처럼 길렀다. 재능이 있었지만, 불운하여 재능의 백 분의 일도 펼치지 못하고 죽었으니 애석하도다!” 하였다.

지금 누가 세상을 화평케 할 것인가?

15972,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되어 의금부에 투옥됐다. 4십여 차례 해전에서 무패 전승으로 왜적을 깨트린 대가치곤 너무도 억울하다. 막강한 무력이 있어도 국정을 넘보지 않았고, 백성의 신망이 높아도 당쟁에 가담하지 않았던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4월 초하루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백의종군에 나섰다. 이때 하늘 같은 어머니(天只)마저 여의고 통곡한다. “나라에 충성을 바쳤건만 이미 죄인이 되었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만 모두 다 돌아가셨네. 어찌하랴! 어찌하랴!” 하지만 이순신은 자기 자신을 탓할 뿐 임금을 욕하지도 나라를 탓하지도 않았다. 분노는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해칠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위기의 시대, 이순신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 솔선수범(率先垂範), 위기일수록 책임자답게 도망치지 않고 앞장섰던 이순신, 자주자립(自主自立), 조정의 지원이 없어도 군량·군선·군사를 스스로 조달하며 홀로 섰던 이순신, 입현무방(立賢無方), 사람을 쓸 때는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오직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중용했던 이순신,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취하여 새것을 창제하니 거북선·조총·화약 등을 개발했던 이순신, 민유방본(民惟邦本), 나라 없는 백성은 있어도 백성 없는 나라는 없으니 백성을 근본으로 여겼던 이순신, 멸사봉공(滅私奉公), 사적인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를 위한 길을 걸었던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분노의 시대, 세상을 화평케 할 이가 누구인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정치와 경제, 외교와 안보 등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갈등이 심각하다. 불신과 분노, 증오와 저주로 가득한 사회는 화평한 세상이 아니다. 이순신도 같은 이유로 파직과 백의종군을 당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분노를 절제할 줄 알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성찰과 자신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자기수용이었다. 오직 침략군과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자신의 책임이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이순신이 그립다. 군인 이순신, 기업인 이순신, 정치인 이순신, 언론인 이순신, 교육인 이순신, 공무원 이순신 등등 모두가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는 여해 이순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