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gt;<br>
주태산 이코노믹리뷰 주필 /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

 

"사장은 ‘클로저’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마케팅은 대부분 이렇게 진행된다.

사장이 마케팅 임원에게 미션을 준다. “박 이사, 신상품을 최대한 많이 팔아주게. 자네만 믿네.” 자리에 돌아온 박 이사는 마케팅 팀장을 불러 흥분한 목소리로 지시한다. “김 팀장이 책임지고 시장조사 업체를 선정해서 타겟층부터 분석해봐. 사장님 특명이니까 멋진 광고카피 만들어서 온-오프 광고 맘껏 집행해봐.”

마케팅 팀은 열심히 달린다. 대규모 시장조사를 하고, 유명 카피라이터에 의뢰해 광고 문안을 만든다. 대행사를 통해 타겟층이 즐겨 찾는 웹사이트, SNS, 신문, 잡지 등의 광고 지면도 잡는다. 사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대적으로 광고전을 펼친다.

신상품의 인지도가 급상승한다. 인지도는 원래 돈 값을 한다. 광고한 만큼 이름은 알려진다. 그런데, 제품 판매는 신통치 않다. 별로 팔리지 않는다. 박 이사는 계속 남 탓이다. “첫 달은 (광고효과를 측정하기엔) 너무 짧고요. 둘째 달은 연휴가 껴서, 셋째 달은 정치스캔들이 터졌잖아요…” 사장은 속 탄다. “아니, 이렇게 좋은 제품을 왜 소비자들이 사주지 않느냐구?” 마케팅팀은 유구무언이다. 다들 영문을 모른다. 그저 상품개발팀을 원망할 따름이다.

‘록시땅 재팬’이’ 한때 이런 처지였다. 2010년대 초반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은 유독 일본에서 4년째 매출 둔화와 이익 감소를 겪고 있었다. 인지도는 높았지만 판매가 부진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제품 탓은 아니었다. 이른바 ‘인지·미(未)구매’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때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마케팅 전문가 니시구치 가즈키다. 그는 2015년 ‘록시땅’의 일본법인 대표로 스카웃됐다. 앞서 10년간 일본 로토제약에서 창의적인 마케팅 능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그의 최근작 <N1마케팅>에 의하면, 그는 취임 즉시 온갖 마케팅 기법이 통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려고 ‘직접’ 팔을 걷어 붙였다.

그는 록시땅 구매 고객을 한 사람씩 만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첫 구매 혹은 재구매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심리상태는 어떠했는지 물었다. 어찌보면 경찰 심문관처럼 고객을 관찰하며 물었다. 그 결과 광고전략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객들은 매우 특이한 이유로 제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첫 구매 고객들은 선물용으로 록시땅을 선택하고 있었다.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해 구매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제품의 편익성(가치나 쓸모)은 ‘선물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마케팅팀이 “당신 피부에 좋아요~”고만 광고해댔으니 효과가 나올 리 있었겠나.

재구매 고객들은 더욱 특이했다. 그들은 록시땅을 선물용으로 첫 구매할 때 매장직원이 준 스킨케어 샘플을 써보고서 본인용으로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날 이후 마케팅 전략이 확 뒤집혔다. 광고 카피는 ‘누구나 기뻐하는 선물’로 바뀌었다. 다른 화장품들과는 달리 “선물용 화장품입니다~”라고 선전하니 저절로 ‘독자성(차별성)’이 생겼고, 상품의 편익성도 크게 부각될 수 있었다. 일본 내 모든 매장에서는 선물을 사러 온 첫 구매자에게는 반드시 스킨케어 샘플을 제공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장 효과가 나타났다. 최초 고객과 재고객, 충성 고객 수가 동시에 증가했다. 취임 2년 차에는 역대 최고의 매출과 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경영자가 직접 관찰을 주도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기존 방식을 덮고 고객을 관찰하여 그 결과에 걸맞는 전략을 도출해 실천 프로세스까지 일사천리로 실행하려면 경영자가 나서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클로저(The Closer)>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LA경찰서 특수수사팀을 이끄는 브렌다 리 존슨(키라 세지윅) 반장은 아무리 뱀장어 같은 피의자라도 조사실로 데려오기만 하면 사건을 종결시켰다. 비법은 피의자의 평소 언행과 주변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었다. 물론 고객이 피의자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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