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석/㈜이글코리아 회장,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경제학박사
방성석/㈜이글코리아 회장, 해사 충무공연구 자문위원, 경제학박사

▶ 분노의 사슬에 묶인 선조·원균·이순신

충무공 이순신 탄신 477주년, 임진왜란 발발 430주년이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의 인물이다. 임진왜란 7년 전쟁, 조선을 패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이가 곧 충무공 이순신이다.

그런데도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라 했다. “이순신이 조정을 속인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고, 적을 놓아주어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남을 모함하여 죄에 빠뜨렸으니 한없이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다.” 과연 선조의 논죄는 합당했나? 모두 실체적 사실의 인지 왜곡이었고 판단 오류였다.

원균과 이순신은 왜 그렇게 서로에게 분노했나? 선조의 논죄대로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빼앗고 원균을 모함한 것이 사실일까? 역사의 평가는 정반대다. 이순신은 원균의 공을 빼앗지도 모함하지도 않았다.

좌의정 윤두수와 영돈녕부사 이산해 등 서인과 북인은 또 왜 그렇게 원균을 두둔하고 이순신은 비난했나? 이순신은 당쟁에 가담한 적도, 당파에 치우친 적도 없다. 실록의 기록이다. “순신은 성품이 곧고 굳세어 조정안에서 대부분 순신을 미워하고 균을 칭찬하였으므로 명실(名實)이 도치되었다.” 이순신은 이 뒤바뀐 실상의 울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순신은 이 모든 걸 ‘자신의 운명’이라 여겼다. 모든 게 때를 잘못 만난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도 스스로 자리를 내놓겠다고 여러 차례 사직을 요청했고, 조정에서 두 사람을 갈라놓고자 했을 때도 자신을 먼저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자청했다.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는 자기성찰(自己省察)이었고, 자신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자기수용(自己受容)이었다.

▶ 배려는 사랑을 낳고, 분노는 재앙을 부른다.

이순신을 분노하게 한 이가 또 있었다. 정유년(1597)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경상우수사 배설(裵楔)이다. 8월 17일, “수사 배설이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 배설이 약속을 어긴 것이 서운하였다.” 18일, “늦은 아침에 곧장 회령포에 갔더니 배설이 뱃멀미를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다른 장수들은 보았다.” 19일, “여러 장수에게 교서와 유서에 숙배하게 하였는데 배설은 공경하여 맞지 않았다. 그 태도가 매우 오만하여 이방과 영리에게 곤장을 쳤다.”

드디어 이순신의 분노가 폭발했다. 칠천량에서 도망쳤던 경상우수사 배설이 다시 통제사로 돌아온 이순신을 철저히 무시했고, 감히 임금의 교서에 숙배하지 않는 불경죄를 저질렀다. 도원수 권율이 통제사 원균에게 곤장을 쳤듯이, 통제사 이순신도 우수사 배설에게 곤장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배설 대신 그의 부하들에게 곤장을 쳤다.

이순신은 곤장을 쳐야 할 대상을 배려했고, 곤장을 쳐야 할 상황도 고려했다. 수군절도사라는 배설의 지위와 자존심, 휘하 장졸들의 사기와 실망감을 생각해서 지휘관에게 직접 곤장을 치는 행위만큼은 삼갔던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중요한 것은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 분노의 절제다. 도원수 권율에게 곤장을 맞은 통제사 원균이 홧김에 출동하여 칠천량 패전을 불러왔듯이, 리더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면 조직 전체가 파멸을 맞는다. 배려는 사랑을 낳지만, 분노는 재앙을 부른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말이다. “분노는 네가 독을 마시고,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 Love Conquers All,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

인지치료 전문가 아론 벡(Aaron T. Beck)의 진단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인지 왜곡을 이해하면 분노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증오의 뿌리는 자기중심적 선입견에서 오는 것이고, 인지적(認知的) 생각의 오류는 자기 혼자만의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닫힌 마음을 열고 함께 소통하고 바꾸어 생각하면 분노는 조절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실수할 수 있고 오판할 수도 있다. 그건 그의 삶이고 그의 인격이다. 그것 때문에 너무 심하게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음해하는 사람,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과감히 단절하고, 대신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과 관계를 더 많이 맺어야 한다. 질투·의심·분노 같은 부정적 사고보다 이해·신뢰·사랑 같은 긍정적 사고로 세상을 봐야 한다. 분노는 고통이고 사랑은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문무겸전의 장수로서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도덕적 감성이 충만했다. 토사구팽 당하면서도 임금에게 충성했고, 백의종군 당하면서도 나라를 사랑했다. 가족과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과 항왜(降倭, 항복해 온 왜인)조차 끌어안은 것은, 오직 자기의 삶을 주도하는 사랑의 실천이었다.

▶ 리더의 분노 절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임진왜란, 미증유의 전쟁사에 누구나 공과는 있게 마련이다. 선조의 오판과 실정, 원균과 배설의 오만과 패전, 그 과(過)를 폄훼함이 아니다. 이순신의 공(功)을 과장함도 아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자질과 역량, 가치와 윤리를 지녔을 뿐이다. 평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후일을 경계하는 징비(懲毖)일 따름이다.

오늘의 대한민국도 나눠지고 찢어지고, 대립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마치 430년 전 모습과 똑같다. 악폐의 지역감정, 악습의 이념 논쟁이 반복된다. 국민 통합에 힘써야 할 국가 지도자들조차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를 촉발한다. 임진왜란 직전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 싸우던 모습과 판박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 진영 논리에 빠진 몰염치가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비록 사적 감정의 증오와 분노라 할지라도 책임 있는 지도자의 언행이라면 역사적 책무를 크게 그르칠 수 있다. 리더의 분노 절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분노 절제는 자기희생이 따라야 하고, 자기희생은 타인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분노의 사슬에 절제·희생·사랑이 한 데 묶여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분노의 노예가 되지 말라! 분노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분노의시대 이순신이 답하다'  방성석 지음 책 이미지 
'분노의시대 이순신이 답하다'  방성석 지음 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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